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다시는 일어나서야 안되는 축구 사건 , 수페르가의 비극

FootBall/사건사고 Story

by 푸키푸키 2020. 6. 21. 10:00

본문


다시는 일어나서야 안되는 축구 사건 , 수페르가의 비극


축구 역사상 최초의 대형 사고라고 불리고 있는 수페르가의 비극 , 이 사건은 토리노FC에게 일어난 사건이었으며 이 사고 한 번으로 토리노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유벤투스의 강력한 라이벌로 알려진 토리노FC , 이들은 현재 축구 팬들에게 세리에 중위권 구단으로 인지되고 있었지만 애초 리그에서 강력한 실력을 가진 구단이었다.


하지만 수페르가의 비극이 일어난 후 팀이 휘청이게되며 이들이 이전 강력한 실력을 보여주기에는 아직까지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수페르가의 비극

ⓒ 위키백과


▼사건의 시작▼


수페르가의 비극은 1949년 5월 4일 , 토리노 FC의 선수 , 스태프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건이었다 ,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해 바르셀로나에서 1차례 경유 그리고 토리노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악천으로 인해 비행기가 추락하게 된다.


토리노로 오는 도중 갑작스런 번개 , 악천이 시작되었고 비행기는 이탈리아 수페르가 언덕에 추락해 이러한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이들은 애초 포르투갈 구단인 벤피카의 초청으로 리스본에서 경기를 치뤘으며 당시 4대3으로 승리를 얻어냈다고 전해졌다.

▼사망자 발생▼


이 비행기에는 토리노 선수 18명 , 스태프들 6명 , 그리고 승무원 4명 , 기자 3명으로 총 31명이 탑승하였고 전원 사망하며 생존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건 이후 이들을 추모하는 기념비까지 새웠지만 토리노FC는 대부분의 주전 선수와 감독 , 스태프를 잃어 토리노는 패닉 그 자체였다.


▼사건 이후▼


당시 세리에A 토리노는 리그 5연패를 앞두고 있는 강팀이었으며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들이 많이 포함된 구단이었다.


당시 유벤투스보다 더 강력한 모습을 보였으며 우승을 앞두고 모두가 사라지며 팬들은 충격 그자체였다.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추모를 하였으며 토리노는 리그를 마무리하기 위해 잃은 주전 선수들 대신 유스 선수들을 출전시켜 겨우 리그 1위를 거머쥐게 된다.


하지만 이후 토리노는 위세는 점점 줄어들게되며 이 날을 마지막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하게 된다.


무엇보다 국가대표 선수 절반을 잃은 이탈리아도 부진에 빠지게 되었으며 당시 이탈리아 팬들은 국가대표를 비난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또 그들을 돕고자 축구계에서는 토리노FC를 위한 자선 경기를 개최하였고 그 상대는 아르헨티나의 강호 리버 플레이트가 선정되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