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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최고의 공격수 토트넘 "해리 케인에 대하여"

FootBall/선수 Story

by 푸키푸키 2019. 1. 1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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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최고의 공격수 토트넘 "해리 케인에 대하여"


토트넘의 대표 선수이자 팀 내 제일 높은 주급을 받고 있는 해리 에드워드 케인 , 그는 현 잉글랜드 선수 중 제일 높게 평가되고 있으며


현 EPL에서 최고의 공격수 반열에 올라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고있다 , 해리 케인은 토트넘 유스 출신으로 토트넘이 키운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고있다 , 해리 케인은 토트넘 역대 최다 득점자 5위에 올랐으며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제국 훈장 5등급에 해당되는 MBE를 수여받기도 하였다 , 이 훈장은 영국에서 엄청나게 영광스러운 일이었으며


케인은 잉글랜드에서도 엄청난 선수임을 확신하고있다 , 케인은 1993년 7월 28일 그레이터 런턴 칭포드에서 태어났다.


케인이 8살 무렵 그는 처음 입어봤던 유니폼은 토트넘이 아니었다 , 그는 아스날 아카데미 출신으로 잠시 아스날에 있었지만


그는 단 1년만에 방출을 당하며 그때부터 해리 케인은 아스날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기 시작했다.



2004년 케인은 아스날을 떠나 토트넘의 유소년 클럽에 입단하며 5년이라는 시간동안 토트넘에서 꿈을 키워가기 시작한다.


2009년 케인은 1군 선수로 등록이 되기 시작하면서 그의 정식 데뷔를 알렸다 , 하지만 케인의 시작은 그리 좋지 못했다.


케인은 토트넘 생활 단 2년 후 임대를 다니기 시작한다 , 2부리그인 레이튼 오리엔트 , 밀월 FC , 노리치 시티 , 레스터 시티에서


4개의 구단에서 단 1년 씩 임대가 되었으며 노리치 시티를 제외한 3개의 구단에서 15경기 이상 뛰어봤지만


케인은 많은 득점을 하지 못하며 토트넘의 어린 선수로 인지되고 있었다 , 그렇게 4년이라는 연속적인 임대 생활이 끝나


케인은 다시 토트넘의 유니폼을 입게되었다.



2014년에 토트넘으로 돌아온 해리 케인 , 그는 긴 시간 토트넘을 떠나 돌아왔지만 당시 토트넘에는 아데바요르 , 솔다도가


주전 공격수로 자리를 잡고있었으며 케인의 경쟁은 쉽지 않았다 , 당시 케인은 두 선수의 교체 선수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케인에게 시간은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 아데바요르가 팬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행동을 계속해서 보여주며


아데바요르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기 시작했고 스페인 대표 골잡이 솔다도도 토트넘에선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토트넘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해리 케인에게 향하게 된다 , 케인은 당시 4경기 연속골을 터트리며 14-15시즌 첼시와의 경기에서


2골 2도움이라는 기록으로 당당히 주전선수로 자리를 잡게된다 , 하지만 당시 토트넘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했다.


솔다도 , 아데바요르 등 팬들은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는 선수들의 이적을 요구하였지만 케인 만큼은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했다.



2015년 케인은 아스날의 알렉시스 산체스 , 첼시의 디에고 코스타 , 맨시티의 세르히오 아구에로를 제치고 당시 당당히 득점 1위에


오르며 잉글랜드 출신의 새로운 공격수가 탄생했다는 것을 알렸다 , 무엇보다 런던의 최강팀이라고 불렸던 첼시 , 아스날을


토트넘이 꺾으며 이 경기에 케인의 존재는 당연했다 , 케인은 어느새 토트넘의 소년 가장이되며 팀을 이끌며 팬들은 이러한


모습에 케인의 별명을 "허리케인"이라고 부르게 된다 , 이 시즌 당시 케인은 토트넘에서 30골 이상 성공한 선수로 


게리 리네커 이후 23년만에 특급 공격수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이 시즌에서 케인은 결국 아구에로에게 밀려


득점 2위에 위치하였으며 토트넘의 올해의 선수 , 팀내 최다 득점이라는 기록으로 14-15시즌을 마치게 된다.



토트넘의 15-16시즌이 시작되고 토트넘의 주장이 골키퍼 위고 요리스로 바뀌며 새로운 분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 케인의 주장 순위는 3순위 였으며 부주장은 벨기에 출신의 수비수 얀 베르통언이 맡게된다.


케인은 14-15시즌에서 보여준 모습과 달리 5경기 0득점으로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 하지만 케인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득점에 성공하며 자신의 부진은 잠깐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케인은 시즌이 끝날 무렵 28골을 기록하며 아구에로와


한 골차이로 득점왕에 오르게 된다 , 당시 케인은 PFA 올해의 팀의 2년 연속 선정되며 케인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16-17시즌이 개막되고 나서 손흥민이 점점 득점에 물이오르기 시작하였고 토트넘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케인은 당시 선더랜드와의 리그 5라운드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하며 여전히 평소 같았지만 경기 도중 인대 부상을 당하며


2달간 결장하게된다 , 그는 당시 EPL 71경기 연속 선발 출전 기록을 이어가고 있어지만 부상으로 인해 이 기록도 깨지고만다.


케인의 빈자리는 손흥민 , 빈센트 얀센이 채울라고 해보았지만 두 선수 모두 그리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토트넘의 득점은 쉽게 터지지 않았다 , 케인은 재활 훈련을 통해 2주나 빠르게 복귀하였고 그의 복귀전은 그 치열하다던


최대 라이벌 경기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선발출전을 하게된다 , 부상이 회복되고 바로 치루는 경기가 아스날이라니...


케인은 부상으로 인해 조심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경기는 결국 무승부로 끝나게 되어버린다.


팬들은 베일 이후 케인이라는 보석에 이런 모습까지 옹호하며 케인의 존재를 높게 평가했다.


토트넘은 당시 케인과 함께 얀센 , 손흥민 등 투톱의 조합을 만들어볼라고 했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게 되었고


여전히 케인이 토트넘의 멱살을 잡고 캐리하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당시 케인이 있던 토트넘은 리그 12라운드 까지 패배의 기록이 없었지만 13라운드 첼시와의 경기에서 이 무패기록은


깨져버리게 되었다 , 2016년 12월 토트넘은 해리 케인에게 재계약을 제안하였고 2022년까지 그리고 토트넘에서


두자릿수 주급을 받는 첫번째 선수로 등극하게 된다 , 케인과 에릭센은 점점 토트넘의 주축이 되어가기 시작하였고


웨스트브롬위치와의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그의 슬럼프는 생각할 수 없게되었다.


케인은 이 시즌에서 EPL 3년 연속 20골을 기록했으며 앨런 시어러 , 티에리 앙리 , 반 니스텔루이에 이은 4번째 기록을


가지게 된다 , 많은 팬들이 최고의 공격수로 알고있는 그들만큼 케인은 점점 그들의 업적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케인은 또 다시 만난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또 다시 승리하며 자신을 아카데미에서 내쫒았던 복수를 똑똑히 치루며


이제 아스날보다 토트넘이 더 우위인 모습을 만들어주게 된다 , 그렇게 한 시즌이 종료되었고 케인은 또 다시


득점왕에 올랐고 PFA 올해의 팀에 3년 연속 선정되며 토트넘의 최고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해리 케인은 17-18시즌 초반에도 3경기 무득점을 이어갔지만 이것은 잠시였을 뿐 , 금방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며


토트넘의 승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 토트넘은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며 물오른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 시즌 당시


손흥민의 활약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케인과 손흥민 , 델리 알리 , 크리스티안 에릭센은 판타스틱 4라는


토트넘의 새로운 라인을 만들어낸다 , 케인은 여전히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요리스가 음주운전으로 주장직을


박탈당하며 그 완장은 바로 케인이 차게되며 당당히 토트넘의 주장으로 자리를 잡게된다 , 해리 케인은 레알마드리드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으며 현 축구 선수 중 제일 많은 이적료가 책정되며 그의 앞날은 더욱 창창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토트넘을 우승으로 이끌 선수 해리 케인 , 그는 과연 손흥민과 함께 토트넘을 우승의 자리에 앉힐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 댓글과 공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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