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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축구 황제" 펠레 , 그가 유럽에서 활동하지 않은 이유는?

FootBall/선수 Story

by 푸키푸키 2022. 2. 1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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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위키

축구를 몰라도 단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축구 선수 "펠레" , 브라질 출신에 "축구 황제"라는 별명 하나로 세계에서 통하고 있는 인물인 가운데 아직까지도 역사상 최고의 축구 선수로 남아 있는 선수였다.

 

리오넬 메시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당대 최고의 축구 선수도 펠레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그는 아직까지도 축구계에서 모습을 비추며 월드컵에서는 "펠레의 저주"가 매우 유명하기도 했다.

 

그가 결과를 예상하면 그 반대로 경기 결과가 나오기로 유명했고 최근 대장 종양 수술 후 안정을 취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갑작스레 펠레가 선수 시절 활동했던 때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그의 선수 시절 커리어에 단 3개의 구단을 거쳤고 그 중 유럽 구단 커리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남미에서 펠레의 라이벌은 디에고 마라도나로 통하고 있었고 펠레는 선수 시절 황혼기를 보내고 있었을 때 디에고 마라도나는 어린 선수로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이러한 마라도나도 바르셀로나 , 나폴리 , 세비야 등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선수 생활을 했었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축구계 전설들은 왠만하면 유럽 구단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펠레는 선수 시절 엄청난 선수였지만 유럽 구단으로 이적을 하지 않았을까?

 

이 이유는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브라질 정치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다.

우선 펠레는 바우루AC , 산토스 , 그리고 뉴욕 코스모스 총 3구단에서 활동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 여기서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펠레는 가린샤와 함께 좋은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당시 유망주였던 펠레와 가린샤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골키퍼 레프 야신을 꺾기도 하였으며 펠레는 결승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영웅이 되었다.

 

당시 펠레가 활동하던 산토스는 단 숨에 주목을 받는 구단이 되었고 그의 상품들은 많은 수익을 창출하게 된 가운데 레알마드리드를 포함한 여러 구단들이 펠레의 영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브라질 대통령이 펠레를 "팔 수 없다"라고 말하며 그를 국보로 지정하였고 여기서 산토스 역시 구단의 슈퍼스타의 이적을 원치 않았으며 당시에는 선수가 이적을 원한다고 해서 이적을 쉽게 할 수 있던 시대였다.

 

1964년 펠레의 영향력을 이용해 브라질은 쿠테타 사건에의 펠레를 끌여들여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다.

 

정부는 국민 영웅 펠레의 이미지를 이용해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전을 생각하고 있었고 대통령 , 정치인들까지 펠레와 자리를 만들며 이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민들도 펠레의 이적보다 잔류를 하는 것을 더욱 더 선호해던 가운데 펠레는 30대 중반 유럽이 아닌 미국으로 이적해 해외 진출은 성공했지만 유럽 진출은 하지 못한 선수가 되었다.

 

당시 시대적 배경에는 유럽 진출이 그리 너그럽게 허용되지 않은 분위기였다 , 각 나라에서는 자신들의 리그에서 열리는 축구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굳이 해외로 나가 선수 생활을 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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