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이탈리아의 공격수 형제였던 필리포 인자기와 시모네 인자기. 불과 2010년도에만 해도 인자기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많은 축구 팬들은 '필리포 인자기'의 이름을 언급했다.
인자기 형제는 피아첸차 칼초에서 유스 시절을 보내고 데뷔했고 형인 필리포 인자기는 임대 이적 끝에 1995년 파르마로 이적해 아탈란타, 유벤투스 AC밀란에서 커리어를 보냈고 시모네 인자기는 임대 끝에 1999년 라치오로 이적해 2010년까지 활동했다.
동생인 시모네 인자기는 라치오의 레전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랜 기간 라치오에서 활동했지만 인자기라는 이름은 오직 형인 필리포 인자기의 것이었다.
두 선수는 같은 공격수였지만 득점에 있어서 확고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필리포 인자기는 점점 빅클럽으로 이적해 활동한 결과 데뷔 후 클럽팀에서만 624경기 288골 46 도움을 기록했다.
반면 시모네 인자기는 클럽팀에서만 321경기 89골을 기록했고 라치오에서만 196경기 55골 20도움을 기록해 형인 필리포와 큰 차이를 보여주었다.
필리포 인자기는 이탈리아 세리에에서 득점왕을 차지했고 월드컵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세리에 우승, UEFA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 이탈리아 컵, 이탈리아 슈퍼컵 등 많은 우승을 여러 차례 경험한 가운데 시모네 인자기는 리그 우승, UEFA 슈퍼컵 우승을 1회씩 경험했고 이탈리아 컵을 3차례 우승을 경험했었다.
두 공격수의 행보는 국가대표에서도 큰 차이를 보여줬다. 필리포 인자기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모습을 보였고 57경기 25골을 기록해 대표팀 역대 득점 공동 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모네 인자기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고작 3경기 출전이 전부였으며 그는 오로지 라치오에 전념하며 형과 비교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2년이 지나간 다음 두 선수는 모두 현역에서 은퇴한 상태였고 '인자기'라는 이름은 여전히 형인 필리포의 것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인자기 형제의 시대는 맞바뀌었다' 현재 인자기라는 이름은 오직 동생인 시모네 인자기의 것이 되어버렸다.
형인 필리포가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었다면 시모네 인자기는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현재 어린 친구들에게 '인자기'라는 이름에 대해 물어본다면 시모네 인자기가 먼저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자연스레 그가 현재 지휘하고 있는 '인터 밀란'의 이름까지 언급되고 있었다.
시모네 인자기는 형인 필리포보다 2년 일찍 은퇴를 선언해 2010년부터 라치오의 유스 감독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6년 감독 대행으로 등장해 정식 감독이 되어버렸다.
현역 시절 라치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그는 은퇴 이후 라치오에서 유스, 대행, 정식 감독직을 2021년까지 수행했으며 그는 라치오를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16-17 시즌 라치오의 세리에 A 5위,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기록했고 치로 임모빌레의 전성기에 힘입어 17-18 시즌 이탈리아 슈퍼컵인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유로파 리그,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점점 좋은 성적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코로나19로 인한 팬더믹 사태에서 20경기 무패를 기록해 라치오를 더욱 강력히 만들어 팬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감독으로서 자질을 보여주기 시작한 시모네 인자기는 점점 유럽의 빅클럽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라치오의 제한적인 재정에서도 그는 적재적소의 영입과 선수 기용에 대해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그는 2021년 리그 최고의 구단인 인테르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으며 리그 우승 후 떠나버린 안토니오 콘테의 빈자리를 '심자기'가 책임지게 되었다.
부담스러울 수 있던 그의 인테르 감독직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우승 주역이었던 아슈라프 하키미, 로멜루 루카쿠가 떠났지만 그는 콘테 시절의 인테르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색깔을 녹이기 시작했고 결국 인테르는 승승장구를 이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그는 당시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꺾고 트로피까지 들어올렸고 22-23 시즌에는 재계약까지 체결해 또다시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해 2연패를 차지하게 된다.
유독 리그 우승과 연이 없던 시모네 인자기는 23-24 시즌 리그 우승에 성공했고 심지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진출하며 인테르가 강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게 되었다.
시모네 인자기는 라치오에 이어 인테르까지 훌륭히 지휘하며 이탈리아 세리에 최고의 감독으로 군림한 가운데 형인 필리포 인자기는 잊히고 있었다.
현역 시절 엄청난 골감각으로 많은 득점을 만들었던 그는 은퇴 이후 AC밀란의 유스 감독으로 시작해 정식 감독이 되었지만 초짜 감독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줬고 현역 시절 구단의 영웅이 최악의 감독이 되며 팬들은 그를 내쫓아야 된다고 외치기까지 했다.
AC밀란의 감독으로서 11개월을 머물렀던 그는 첼시에서 임대 영입한 페르난도 토레스의 부활을 약속했지만 부활은 커녕 밀란의 부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경질되었다.
이후 베네치아, 볼로냐에서 활동해 2~3부 리그, 1부 리그 하위권 구단에서 맴돌던 도중 2부리그인 세리에 B 소속인 베네벤토를 승격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승격 후 필리포 인자기는 동생인 시모네 인자기와 맞대결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있었고 계속해서 추락하며 강등권 순위에 머물다가 끝내 베네벤토는 승격 후 바로 강등을 직면하게 되었다.
그렇게 인자기 감독은 경질되고 브레시아, 레조칼라브리아, 살레르니타나에서 짧은 감독 경력을 이어갔고 현재 세리에 B의 피사 SC의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동생인 시모네는 유럽 최고의 구단들과 겨루며 챔피언스리그를 경험하고 있었지만 형인 필리포 인자기는 2~3부 리그에서 감독으로서 생명을 이어가는데 바빴다.
인자기 형제의 시간과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형인 필리포는 선수 시절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면 동생인 시모네는 감독으로서 여러 차례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한 때 최고의 공격수와 현재 최고의 감독의 이야기는 신기할 정도로 맞바뀌어 있었으며 이제 시모네 인자기는 현역 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우승'이라는 단어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형인 필리포 인자기는 '우승'이라는 단어를 '승격'이라는 단어로 연결 지어야 했으며 이탈리아 최정상 구단에 있던 그에게 낯선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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